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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혹은 일상의 변주

09/01/2019

  스페인의 화가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가 “회화란 또다른 형식의 일기이다(Painting is just another way of keeping a diary)”라고 한 것처럼 많은 작가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풀어 놓는다. 문자가 발명되기 전이었던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는 그림이 인간의 일상을 말해줄 수 있음을 알게 해 주는 최초의 예술 형식이다. 그러고보면 무언가를 쓴다는 것, 그린다는 것은 ‘인간의 손 끝에서 이루어지는 행위’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회화는 예술가 개인의 일상이나 관심사 등을 손으로 풀어낸, 전통적인 의미의 일기와 같은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많은 시각 예술 형식들 중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소묘나 회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회화가 갖는 매력은 바로 그러한 ‘손 맛’에 있다. 그날 그날의 인상을 노트 위에 적는 것, 단정하게 혹은 구불구불하게 저마다의 글씨체로 각기 다른 일상을 적어 내려가는 전통적인 의미의 일기가 화가들에게는 선과 색 등의 조형 언어로 대체되어 변주되는 그들만의 시, 짧은 산문인 것이다. ‘꿈 혹은 일상의 변주(The Variations on the Theme of Daydreaming)’ 전은 이렇듯 자신의 일상의 흔적을 ‘회화’라는 형식으로 기록하는 세 명의 작가들의 작품에 관한 것이다.

 

  김민지 작가는 자신의 여행 기록을 작업의 주제로 삼는 작가이다. 강원도 인제가 고향인 그녀는 ‘비 오는 139km의 풍경’이라는 제목의 회화 연작을 통해 9년째 타지 생활을 하며 일상이 되어버린 여행 중의 풍경, 특히 비가 내리는 버스 창밖의 모습에 투영된 자신의 감성을 표현하고 있다. 여행은 사람의 모든 감각을 깨우는 전도체가 된다. 김민지 작가가 여행을 통해 마주하게 되는 자연은 그녀에게 보다 생경하게 다가왔을 것이고 그림의 주제로서의 의미로 각인이 되었을 것이다. 특히 비가 내리는 창 밖의 풍경을 보며 고향을 떠올렸다는 작가에게 그 기록이란 기억 속에 존재하는 어떤 장소, 과거의 사건들, 닿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그리움, 동경의 투사였을 것이다. 창밖의 검은 풍경과 닿을 수 없음을 암시하는 차창의 영롱한 빗방울의 표현은 과거와 현재를 생각하는 작가의 상태를 말해주며 작품 앞에 선 관객으로 하여금 그녀가 느꼈을 아쉬움, 슬픔 등을 전하는 듯 묘한 공감을 이끌어낸다.    

 

 


  
  스위스의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는 “소묘란 산책에 나선 하나의 선이다(A drawing is simply a line going for a walk)”라고 하였는데 파울 클레의 이 말처럼 예술가들이 화면 위에 그려내는 선은 어쩌면 그들의 의식 체계와 상관없이 스스로 발현되는 마법과 같은 무엇일 수 있다. 즉 산책의 주체가 예술가인 동시에 하나의 선인 것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술 작품이란 한 예술가의 삶이 일기로서 표현되는 결과물이며 동시에 그 구성 요소들이 스스로 진화하게 만드는 예술가의 심적 원동력의 발현인 것이다. 이다겸 작가는 삶의 진동과 굴곡을 선으로 표현하며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그녀는 자신만의 질서 하에 선묘를 구성, 배열하여 전체의 화면, 즉 그녀가 생각하는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회화’라는 형식의 특성상 그것은 시작과 끝이 한번에 제시되는 공간성을 갖는다. 선으로 표현되는 그녀의 글쓰기는 언어가 갖는 논리와는 다른 질서를 갖는다. 즉 관객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영적 작용이 그림의 내용이 되도록 열어두는 화법인 것이다. 누구나의 화단에 있을 법한 화분, 어느 골목 어귀의 담쟁이 넝쿨 등 그녀의 이야기는 지극히 내밀한 자신의 일기임에도 불구하고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형식으로 다가온다.  

 

 

 

 

  황해연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지질학적인 요소들을 통한 내면의 탐구이며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의 시각적 표현’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녀는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과 그로 인해 갖게 되는 다양한 감정들을 그녀만의 화법으로 표현해낸다. 굵은 철선, 강한 색채 등 관객의 시선을 끄는 구성 등이 흥미로운데 지질학 학위 또한 갖고 있는 그녀는 우리가 처한 자연 환경, 생명의 순환, 삶과 죽음 등의 보편적 주제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염려를 자신만의 화법을 통해 시각적으로 제시한다. 이를테면 그녀가 에너지, 생명 등을 표현하기 위해 상정한 색은 주황색이고 빨강색은 모든 에너지가 소모된 고통을 드러내는 색이며 그녀의 화면에 자주 등장하는 물방울 형상은 ‘눈물’, ‘생명’ 등을 이야기하는 매개체이다. 특히 굵은 철선으로 흑백의 대비를 만들어 제시되는 빙하는 그녀에게 있어 유토피아, 생명의 근원인 자연, 천천히 녹으며 물이라는 또다른 형체로 바뀌는, 그리하여 자연으로 회귀하는 인간과 유사성을 갖는 상징물이다. 일상의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스케치를 하고 화면을 정리하듯 꼼꼼하게 붓질하는 그녀의 작업은 자신을 돌아보며 쓰는 일기의 행위와 많은 부분이 유사하다.

 

 

      

  ‘꿈 혹은 일상의 변주’ 전의 참여 작가들은 이렇게 모두 자신만의 형식으로 써내려간 일기를 보여준다. 빠르게 달리는 차 창 너머로 보이는 변화무쌍한 풍경들에 오히려 고향, 낙원 등이 갖는 영원성을 투사시키려는 김민지 작가의 슬픔이,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들을 이야기하느라 무수히 중첩시키는 선들을 통해 새로운 공감을 이끌어내는 이다겸 작가의 시적 감수성이, 매일이 양식이나 일과처럼 정리된 화면을 구축하며 화면 위에 새로운 자연을 제시하는 황해연 작가의 작업을 통한 수련이 관객들에게 자신을 반추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의 일기로 다가올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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